아티스트와 기업가의 공통점
아티스트는 본질에 집중한다. 그 본질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고 해석의 영역이다. 그 해석에 혼이 담겨 있으면 그뿐이다.
기업가도 그렇다. 본질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해석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개인이 먼저 할 일은 본질이 아님이 분명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만큼 중요하다.
피곤해도 굳이 해야 하는 것, 돈이 들어도 굳이 해야 하는 것,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굳이 해야 하는 것이 나의 본질이다.
학생도 바쁘고, 직장인도 바쁘고, 주부도 바쁘다. 주어지는 시간도 24시간으로 똑같다.
왜 바쁜가 하면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굳이 해야 할 일을 할 시간도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라고 했다.
나의 고래
한 아이가 도화지 가득 검은색만 칠한다. 그리고 다음 도화지에도 검은색을 칠한다. 그다음에도.
아무도 아이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고 걱정했지만 정작 아이가 그리고 있었던 것은 여러 장의 도화지가 필요한 엄청나게 큰 고래였다.
사회는 주어진 도화지에 본인들이 예측 가능한 일을 할 때 그 사람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들이 꿈을 위해 하는 행동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쉽게 비난하고 걱정하는 척하면서 폄하한다. 그래서 꿈을 향한 여정은 투쟁의 여정이기도 하다.
사회를 이뤄 살아가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지금 인정받을 수 있는 행동만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남들이 코치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자기 그림이 아니다.
먼저 내가 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타인의 인정은 그다음이다. 자기 스스로 엄지손가락을 척 세울 수 있는 삶이 먼저다.
삶의 3도
삶의 갈증은 조건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진짜 충만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삶의 3도가 있어야 한다.
1. 순도
순도 100%는 다른 불순물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삶에서의 불순물은 외부의 시선, 부모의 기대, 조건, 본인의 두려움이다.
위기를 맞았을 때 남 탓을 한다면 순도가 낮은 것이다. 이 말은 곧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지 않는다는 의미다.
스스로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면과 외면을 일치시키는 것, 남이 맞다고 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맞다고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순도 높은 삶이다.
2. 농도
자기 일에 대한 자신의 기대치가 높은 사람들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비난도 두렵지 않고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 수준까지 올려버리면 타인의 시선이 사라진다. 몰입의 시작이다. 농도 짙은 삶이란 몰입하는 삶이다.
농도가 짙은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보다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것을 목표치로 설정한다. 그리고 몰아붙인다.
설사 실패한다 해도 성장할 수 있다. 성장 없는 성공보다 성장 있는 실패가 낫다.
3. 밀도
순도 높은 선택, 그 선택에 대한 높은 기준과 농도 짙은 몰입 그리고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일의 프로세스가 밀도다.
이것저것 하지 않고, 오로지 순도 높은 하나의 일에 몰입할 시간의 자원을 마련해야 한다. 밀도는 일을 하는 방법이다.
순도, 농도, 밀도가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큰 기쁨과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립에서 자유로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완전한 자립을 이룰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문제는 의존에 형태다.
의존과 통제는 늘 같이 다닌다. 부모에게 의존하면 부모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직장에 의존하면 직장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강한 자립이 자유의 토대다. 점점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 점점 나답게 사는 것이 자유다. 나답게 살려면 통제가 적어야 한다.
의존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의존의 강도는 강해지고, 의존하는 사람이 불특정 다수가 될수록 자립에 강도가 세다.
불특정 다수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끌고 가려면 자기 세계가 확고해야 한다. 독특한 나다움을 유지해야 한다.
마니아도 충분히 많다
스토리가 있는 상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다.
한 잔의 커피도 정성그럽게 먹어야 한다는 커피를 참 좋아하고 커피 맛에 민감한 클라리넷 연주자가 창업을 했다.
처음에는 월세 600달러짜리 식당 구석에서 시작했지만 곧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다 단골이 투자를 시작했고 10여 년 만에 엄청난 투자들을 받았다.
제임스 프리먼의 블루보틀의 이야기다. 블루보틀은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한국 지점이 오픈했을 때 사람들은 줄을 섰다.
과거에는 상품을 알리려면 아주 오래 하거나 마케팅 업체에 돈을 지불해야 했다.
지금은 하지 말라고 해도 모두들 "이 스토리를 내가 경험했음"을 알리고 싶어 안달 나 있다.
그러니 특별하고 기막힌 스토리가 있으면 된다.
Don't find. Be found!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만 하고 만다. 귀찮아서 안 한다. 돈이 아까워서 안 한다.
뭘 하든 "어느 정도까지"에서 "그렇게까지"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자기 세계가 생긴다.
지금 해야 할 고민은 "나는 무엇을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탐색이다. "나는 무엇을 어디까지 해보았는가?"
유명하지 않을 때, 누군가 보고 있지 않을 때의 모습이 신뢰감을 준다.
"보는 사람도 몇 안되는데, 저 짓을 3년째 해오고 있었구나. 멋지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브랜드로 인식되는 순간이다.
꾸준히 나의 것을 만들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을까?
새로운 세대는 늘 기성세대에게 충격을 준다. 100년 전에도 1000년 전에도 요즘 젊은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었다.
그러니 별일 아니다. 별일은 이른바 밀레니얼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슬픔이다.
밀레니얼세대는 답답하다. 경제는 저성장 시대에 갇혀버려 주식으로 자산을 모으기도 어렵고 부동산은 언감생심이다.
기성세대들은 더욱 노력하라고 하지만 노오력은 이들이게 그만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분수에 맞게 살기엔 본 게 너무 많고 보이는 게 너무 많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온갖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을 보니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껴진다.
내 삶,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의문의 생긴다면 이미 괜찮지 않은 거다.
밀레니얼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자기 세계를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훨씬 민감하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여기에 길이 있다. 욕망으로 구축한 세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야 한다.
뭔가 찾아봐야 한다. 이미 50년 전에 달에 간 인류다. 시행착오의 용기만 있다면, 방법은 반드시 있다.
건당 이코노미
최근 경제 이슈 중 하나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
1920년대 미국에서 재즈의 인기가 높아지자 단기적인 공연팀들이 생겨난 데서 유래한 말고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매일 출근하는 회사도 없고 자리도 없다. 그때그때 모여서 일하고 흩어지는 일자리다.
배민이 생기고 활성화되면서 숙련된 배달부의 가치는 없어졌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고 내일 그만둬도 된다.
중요한 건 이들의 사회적 위치다.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 건당 수수료를 받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배민이라는 플랫폼은 고용된 배달부를 자영업자의 형태로 바꾸어 버렸다.
우리가 과거에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는 나의 브랜드를 키움이 아니라 어딘가에 고용되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고용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시장에서 상품화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만원 버스의 벨
20세기 대량생산은 안정적인 노동공급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업들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했고 임금과 복지 등 노동자들의 안정성을 보장했다. 노동과 자본의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70년대 말까지 세계 자본주의는 이런 모습이었다. 풍요의 시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 불리던 시대다.
이런 시대에서 젊음을 보낸 사람들은 회사와 자신을 거의 동일시했다. 운명공동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다. 미래는?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현재 기업들은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다. 누구를 욕하기도 애매하고 욕을 해도 흐름은 흐름대로 간다.
결정타는 바로 IT 플랫폼의 등장이다. 플랫폼경제는 기계나 건물 등 대규모 자본투자뿐 아니라 이에 필요한 거대 노동력 관리까지 줄일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결국, 조금 더 잘하는 것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지기만의 유니크한 가치를 키워놓으면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핵심은 다름이고 독특함이다.
대중적인 길로 열심히 노력해도 만원 버스일 뿐이다. 당장은 만원 버스에서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벨을 누를 준비를 해야 한다.
유대감은 유료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다. 간섭을 싫고 관심은 좋다.
사생활의 선을 넘어오는 건 싫고 끈끈한 유대감을 필요하다. 과거에는 직장이 일정 부분 그 역할을 했다.
지금은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노동력을 제공했으니 월급을 받은 거다. 회사 사람들과 사적으로 깊게 얽히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끊임없이 어딘가로 연결하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
말이 통하는 사람, 내 취향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 하고 거기서 유대감에 대한 욕구를 채우려는 것이다.
취향 공동체를 찾아야 질 높은 유대감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라는 언택트 시대가 진짜 콘택트를 드러나게 해 주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었던 기간을 떠올려보자.
만나지 못해서 편안했던 사람은 누구이며, 만나지 못해서 아쉬웠던 사람은 누구인가. 그럼에도 만났던 사람은 누구인가.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취향으로 통하는 가치 공동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취향으로 통한다.
꼰대들은 처음 사람을 만나면 학연이든 지연이든 군대든,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고 서열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 아주 멍청한 짓이다.
근데 취향이면 다르다. 업무로 만난 사람과는 일이 끝나면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창밖으로 고양이가 지나간다. 시선을 빼앗긴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네." 그러면 끝이다.
좋아하는 것, 취향은 나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같은 정체성은 만나면 쉽게 친해진다.
덕업일지
과거에는 기업이 생산과 유통을 독점했지만 지금은 개인이 아이템을 낼 수 있다.
단 기간에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좋아하고 뾰족한 나의 취향이 있다면 독보적인 장르를 만들 수 있다.
삶과 돈벌이가 구별이 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돈이 크게 안 되더라도 충분히 기쁜 삶이다.
일과 놀이가 구별이 안 되는 상태, 내가 생각하는 진짜 행복한 삶이다.
축적의 길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정동 교수의 축적의 길이라는 책을 보면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저성장시대에 직면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개념설계역량"의 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는 누군가가 개념설계를 하고 누군가는 실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개념설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언가를 그려낸다는 것으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즉 선진국들은 "개념설계"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제품을 만들어내고(에어비엔비, 유튜브, 넷플릭스 등등..) 그 시장에서 독점적 우위를 발휘해서 어마어마한 생산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비즈니스에서도 누가 이런 개념설계역량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경쟁력 우위를 갖느냐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개념설계역량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지속적으로 시행착오를 겪어 나가면서 그 경험치를 축적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왜 그런 아이디어들은 사업화되어서 세상을 바꾸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할까?
그것은 바로 "스케일업" 능력의 부족, 즉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버티고 그것을 데이터화하는 작업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근시안적으로 접근하고 초기에 잘 안 될 거 같으면 일찍 포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업이든 개인이든 어떤 분야에 탁월한 결과를 낸 사람들은 철저한 "존버정신"으로 계속해서 해나가는 데 그 성공의 비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좋은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 속에 겪는 경험들을 축적시킬 수 있는 힘만 있다면 누구나 탁월해 질 수 있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탁월함의 발견 - Part 1 (3) | 2024.01.30 |
---|---|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 - 사람을 다루는 기본 방법 (1) | 2023.07.22 |
리더의 용기 - 명확함이 친절한 것이다 (2) | 2022.12.24 |
리더의 용기 - 취약성 인정하기 (3) | 2022.12.09 |
시작의 기술 - Part 2 (0) | 2022.02.21 |